커피찾는남자 / Coffee Explorer
저는 군대에서 청력을 잃었습니다. 본문
돌아보면 제가 군대에서 경험했던 최악의 가혹 행위는 사격에서 일어난 것 같습니다. 저는 이로 인해 군대에서 청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사격장에서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군기를 잡으려던 병사 문화로 인해 이등병 시절 귀마개를 사용하지 않고 사격훈련에 장시간 노출된 결과 이명을 얻었습니다. 저는 2002년 강원도의 한 특공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이미 군대의 폭력이 많이 사라진 시기라고 하지만 특공부대의 특성상 엄한 군기를 필요로 했고, 그러한 군기가 엄격한 병사들 간의 상호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믿는 지역대에서 근무를 했었습니다.(특전사와 특공대는 ‘중대’ 개념을 ‘지역대’라고 표기함)
사격은 계급이 낮았던 시기에 그다지 편한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실탄을 사용하는 사격장에서의 군기는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에 사격장은 ‘군에서 폭력이 허용되는 곳’이라고 선임들이 후임들에게 가르쳐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군기잡기가 병사들 사이로 넘어와서 유치한 형태를 띄게 될 때입니다. 예를 들어 일병 이하는 군용 보급 비누만을 사용하고, 상병부터는 군 외부에서 가져온 혹은 PX에서 공식적으로 판매되는 세면제와 샴푸를 사용할 수 있다는 등의 부대별로 내부적으로 세습되던 '계급별 행동 지침’ 따위 말입니다.
사격장에서 이루어지는 계급별 행동은 ‘귀마개'에 대한 것입니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영화관에서 보는 전투씬과 실제 사격은 그 엄청난 소음에서 가히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사격은 그야말로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거의 경험할 수 없는 가공할만한 큰 소음을 수반합니다. 수류탄 투척의 경우 사격을 넘어서는 엄청난 소음과 진동을 경험하는 극한의 상황인데요.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선임들이 계급이 낮은 병사에게 귀마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 입니다.
당시 부대에는 이렇게 제대로 된 귀마개가 보급되지 않았던 상황이었습니다. 비슷한 형태의 귀마개가 사로(사격하는 자리)에 띄엄띄엄 놓여있긴 했지만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계급이 좀 있는 상병 이상의 경우 3M과 같은 곳에서 만든 오렌지 색상의 귀마개를 사용했는데요. 그보다 계급이 낮은 병사들은 휴지를 조금 말아서 귀에 넣어 청력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그보다 큰 문제는 이런 행동 마저도 병사 세계에서 ‘군기없는 행동’으로 치부되어 소위 일병이 꺾이기 전까지는 휴지로 자신의 귀를 보호하는 행동조차 하지 못하게 강제했다는 것입니다.
특공부대로 자대 배치를 받은 후 첫 사격 때였습니다. 그 날은 특별히 사격 인원이 충분치 않아, 여러 차레 사격 부사수(사격을 바로 옆에서 돕는 역할)를 해야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귀에 대한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사격장에 투입되어 긴 시간 소음에 노출되어야만 했죠. 긴 사격이 끝나자 제 귀에는 심각한 이상이 생겼습니다. 마치 양 쪽 귀에 물이 들어간 것 마냥 귀가 멍멍해지고 윙- 소리가 나며 선임들의 말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아 “잘 못 들었습니다.”를 하루에도 수십 차례 외쳐야 했습니다.
귀가 정상이 아니라서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선임들에게 이런 상황을 말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등병이 누군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얘기를 하는 것 역시 군기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용기를 내어 몸에 이상이 있음을 말했지만, 문제는 선임들의 반응이었습니다. “나도 예전에 첫 사격할 때는 그랬다”, “시간이 좀 지나면 다 괜찮아진다”는 말을 하며 누구도 저의 상황에 대해서 특별히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았던 것 입니다.
거의 2주의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청력이 어느 정도 되돌아오긴 했습니다. 그러나 윙-하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귀 안에 매미가 들어앉은 듯 윙-하고 울리는 소리는 몹시나 신경을 거슬리게 했습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약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소리는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제 귀를 울리고 있습니다. 후에 이것이 소음에 의한 급성 이명, 난청이라고 하는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명과 난청은 발생한지 수 일내에 급히 조치를 받지 않으면 특정 주파수를 담당하는 청력 세포가 죽게 되고, 죽은 세포가 담당하던 영역의 주파수가 들리는 것 처럼 착각을 하게 만들며 남들에게 들리지 않는 환청을 만들어냅니다. 청력에 대한 병들은 발생 직후 가능한 빠른 시간 안에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고 치료하는 가운데 심신의 안정을 취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청력은 영원히 회복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치료가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후각과 청각인데요. 예민하지만 수술이 가능한 시각에 비해 후각, 청각은 고칠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습니다. 후각의 경우 잃게 되는 경우가 희박하기 때문에 가장 고치기 힘든 감각을 말할 때 청각을 얘기하곤 합니다.
군 복무 시절, 첫 사격의 시기로부터 거의 10개월이 지날 무렵 저는 상병 계급장을 달았고, 비로소 조금은 당당하게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가고 싶다는 요청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공대의 경우 그런지 인원도 많지 않다보니 진료를 받으러 가는 인원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워야해서, 계급이 안되면 외진도 잘 못 다녀오는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소대장과의 면담에서 ‘나는 제대 후에 군대에 소송할 거다’라고 까지 주장하며 결국 병원을 다녔습니다. 처음으로 간 병원에서 진단한 병명은 ‘이명의증’, 약 처방을 해주기는 했지만 군의관 역시 이미 치료하기엔 늦었고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제게 알려주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그 이후 약 1년 간 그다지 증상 호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약을 꼬박 꼬박 먹으며 제대를 기다렸습니다.
제대 이후 저는 귀를 고치기 위해, 당시 국내에서 가장 귀 이명 치료에 진보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던 의료기관 등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고액을 들여가며 반 년 간의 치료를 받았지만 아무런 진전도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30대 중반이 된 지금도 제 귀에서는 24시간 365일 내내 매미 소리가 납니다. 평생을 귀 옆에 소음을 달고 다니는 삶을 여러 분은 상상하실 수 있나요.이후 저는 군병원에서의 치료 근거와 제대 이후 치료를 받았던 것을 근거로 이명에 대한 공무상 상해를 인정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현행 보훈처의 관련 기준들로 인해서 국가로 부터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명으로 인해 고통을 받아오고 있습니다.
군대에서의 사격 때문에 귀의 청력에 손상을 입은 사람은 저뿐만이 아닙니다. 군이명피해자연대(http://cafe.daum.net/promoteearplugs)는 이런 사람들이 약 4,500명 가량 모여있는 곳 입니다. 군에서의 계급간 차별과 가혹 행위, 그리고 국방부의 관리 소홀, 청력 손상 방지 대책 마련 미흡 등으로 인해 더 이상 저와 같은 피해자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군은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가 개인 귀마개를 사용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하고, 청력 손상에 대한 가능성과 이를 막기 위한 방법을 병사들에게 교육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명과 난청으로 고통 받는 모든 현역/예비역들에게 응당한 보상을 해야만 합니다.
이 문제에 좀 더 관심이 있으시다면 시간을 내서 아래의 영상을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