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쓰니깐 커피라고? 커피는 원래 향기롭다

Coffee Explorer 2016. 6. 8. 13:57


‘커피는 원래 쓰다. 그래서 커피는 인생을 닮았다’라는 말들을 하곤 한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할까? 사실 나무에 열려있는 상태에서 커피는 빨갛게 잘 익은 과실에 쌓여있는데, 커피의 과육 자체는 상당한 단 맛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생두라고 부르는 씨앗에는 재배 과정과 가공 방식에 따라 과육의 단맛과 단향을 가진 성분이 스며 들게 되는데, 로스팅 이후에는 단향을 내는 성분이 로스팅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를 통해 달다는 미각적 작용을 하게 된다.


커피가 원래 쓰다는 말도 대부분 커피의 재배 및 가공 기술이 좋지 않던 시절, 결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좋지 않은 맛을 감추기 위해 강하게 로스팅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커피 재배와 가공 기술로 인해 이제는 과거보다는 상대적으로 연하게 하는 로스팅 방식이 세계적인 흐름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커피는 더 이상 쓴 맛의 상징이라 할 수 없다. 본연의 매력적인 향기, 사실은 이것이 커피다.





몇 해 전 2013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 피트 리카타(Pete Licata)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 피트의 스케줄을 따라 이곳 저곳을 함께 돌아다녔는데 그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시간이 있다. 한국 바리스타 협회장에서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열린 피트 리카타와 한국 바리스타들과의 만남이었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되기까지 피트 리카타는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거듭했다고 한다. 바리스타라는 직업의 사회적 위치가 다른 나라에서도 한국과 크게 다른 것은 아닌 것 같다. 대략 9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수없이 도전한 끝에 결국 바리스타라는 영역에서 세계의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선 피트를 보며, 성공이나 실패 자체보다는 그가 실패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가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이 되기 위한 마지막 도전은 ‘seed to cup’ 이었다. 피트는 커피가 씨앗(커피도 일종의 씨앗이니)부터 컵에 담기는 모든 순간의 자신의 직접 만들지 않는다면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커피 산지로 넘어가서 긴 시간동안 커피를 수확하고, 손으로 일일이 골라내고, 가공/로스팅까지를 직접하게 된다. 물론 이런 일을 일선 바리스타 모두가 해야하는 것은 아니다. 피트는 많은 이들의 롤모델이 되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을 꿈꾸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챔피언이 되었다.


챔피언이라는 성공의 타이틀도 물론 중요한 결과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실패를 넘어서 자신만의 향기를 가진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패없는 성공은 없겠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삶을 위해 실패를 굳이 사서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젊어서 '실패'까지 굳이 사서 할 필요는 없다. 과연 ‘아프니깐 청춘이다’일까? 그렇지 않다. ‘아파도 청춘이니’ 다시 용기를 내서 도전을 해야지, ‘아프니깐 청춘이다’는 말로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의 굴레 속에 언제까지 바리스타들은 더 희생해야만 할까.


한 잔의 맛있는 까페라떼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쓴 맛이 아니라 짙은 에스프레소이다. 언제까지 커피는 원래 쓴 것이라며, 커피를 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쓴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커피의 과육은 원래 달다. 커피의 과실이 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향미를 담아내서 만들어지는 것이 커피다. 물론 커피는 설탕이 아니라 엄청난 강도의 단맛을 내지는 못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본연의 향기를 깊이 있게 내는 것이다.




바리스타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깊은 향기를 내기 위해서는 아직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 당장 살 집을 고민해야 하고, 받은 월급으로는 부모님 선물 하나 제대로 사기 쉽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서비스 업의 임금 구조, 그 이면에 있는 임대 등의 사회 기반 구조, 그리고 이런 직업에 대한 인식 등이 해결되어야 한다. 그럴 때에야 바리스타들이 가진, 그 과육의 진한 단맛이 스며든 향긋한 커피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아프니깐 청춘이다'라고 말하며 청춘에게 아픔을 요구하지 마라. 

청춘은 아프기는 커녕 푸르기만 하다.

‘쓰니깐 커피다’라고 커피에 쓴 맛을 요구하지 마라.

커피가 원래 달고 향긋하다. 


나는 항상 청년의 실패를 흥미롭게 지켜본다. 청년의 실패야말로 그 자신의 성공의 척도다. 그는 실패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대처했는가. 낙담했는가, 물러섰는가. 아니면 더욱 용기를 북돋아 전진했는가. 이것으로 그의 생애는 결정되는 것이다. _몰트케 (Bernhard von Moltke, 1800~1891)


중국 운남 커피 농장에서

사진/글 커피찾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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