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커피와 로스팅

로스팅과 데미지_ 2. 데미지란 무엇인가?

Coffee Explorer 2020. 5. 15. 11:14

 

 

데미지란 무엇인가?

많은 로스터가 데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사실 로스팅에서 데미지라는 표현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사용하는 일은 찾기 쉽지 않습니다. 지난 영상에서 수분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서 생각해봤는데요. 로스팅에서의 수분은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중요한 매개체입니다. 하지만 자칫 커피의 향미를 제대로 발현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자이기도 하며, 생두가 타는(?) 것을 막으면서 적정하게 로스팅을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보호막이기도 합니다. 이런 수분의 다양한 역할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로스팅을 제대로 알기 힘들죠.

 

먼저 이해하기 쉬운 일상적인 예제를 들어볼까요?  일반적으로 뚜껑을 열고 조리를 할 때 프라이펜 주변부에 묻은 양념이, 쉽게 검게 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뚜껑을 덮고 조리 중이라면 주변 부분에 양념이 묻어도 웬만해서는 잘 타지 않죠. 수증기가 물질의 갈변과 탄화를 막는 효과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다른 예제로 캠핑에서 사용하는 제품 중에는 종이 냄비가 있습니다. 종이로 만든 것인데 직화로 조리를 해도 라면을 끓일 수는 있지만 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이의 발화 온도보다 물의 끓는점이 낮기 때문에 얇은 종이 부분에 계속해서 물이 공급된다면 종이가 타지는 않는 것이죠.

 

사진 출처 : https://www.amazon.com/Cooking-Serving-Flammable-Disposable-Portion/dp/B0175ZGGZK

 

커피 로스팅에서 특별히 중요한 현상은 생두 내의 수분이 수증기화되면서 부피가 커지고, 수증기가 생두 내부를 가득 채우고 나서는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생두의 표면 부분은 수분을 방출시키는 최종 관문이자 동시에 열을 제일 먼저 받아들이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로스팅 과정에서 열과 기류는 생두 겉면의 수분을 가져가는데, 이때 내부에 있던 수증기가 생두 겉면의 건조된 부분을 다시 채워주게 됩니다. 적절한 강도로 화력을 공급하고 에어플로우를 만들고 있다면 생두의 겉면의 건조 속도와 생두 내부의 수증기가 표면으로 이동하는 속도가 균형을 이뤄서, 너무 이른 타이밍에 생두의 겉면이 과하게 건조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너무 강한 화력을 공급하거나 너무 빠른 에어플로우를 만들고 있다면 생두의 겉면은 너무 이른 타이밍에 과하게 건조한 상태가 됩니다. 이로 인해 해당 부위를 통한 열 흡수와 지속적 수분 방출은 원활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생두 내외부의 유기적 연결은 깨어진 상태가 됩니다. 그대로 로스팅을 진행하게 된다면 해당 부위의 커피 조직은 탄듯한 커피의 향미를 만들거나(일반적인 상태에서는 탄화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고), 전체적으로는 강도가 약하며 기대했던 향미가 발현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두고 "표면에서의 건열 반응이 일찍 일어났다"리고 표현하기도 하고, "표면의 경화가 일어났다", "데미지를 입었다"라고 말합니다. 

 

다시 한번 로스팅에서의 데미지를 문장으로 다듬어보자면 다음과 같이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두의 특성에 비해 과한 화력이나 에어플로우로 로스팅할 때 수증기가 생두의 겉면을 지켜주지 못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원활한 에너지 전달과 수분 감소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서 최선의 로스팅 결과를 막는 것."이라고 일단 정리해봤습니다. 표현에 오류가 있거나 조금 더 나은 표현이 있는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생두의 겉면이 건조해지는 것을 막아서 타거나 열에 의한 건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적절하게 저지하면서, 데미지를 막으며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생두 내부에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아예 느린 로스팅은 이런 관점에서의 데미지 리스크가 적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한계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특정 시간이나 느리게 로스팅해야 한다는 주장은 초보적인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