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농심의 실패작 커피, 강글리오가 남긴 교훈

Coffee Explorer 2015. 9. 30. 14:34

한국 식품업계의 절대 강자인 농심은 식품에 대한 연구개발 역량과 설비가 충분함에도 왜 커피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농심이 커피를 내놓는다는 기사를 봤을 때 저의 가슴은 설레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맛의 커피를 내놓을까?"

"커피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까?"


농심이 내놓았던 커피는 매우 독특했습니다. 농심이 내놓았던 강글리오 커피를 커피찾는남자와 함께 찾아봅시다.










강글리오 커피, 그게 도대체 뭐지?

어느 날 농심이 커피를 들고 찾아왔다. 때는 2013년 1월 28일.


강글리오사이드는 모유나 녹용, 녹골(사슴뼈)에 있는 물질로, 혈액 순환과 면역력 증진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성분입니다. 농심은 자사의 연속 진공건조방식(Zeo-CVD)으로 제조해 아라비카 커피의 향을 충분히 담아냈다고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강글리오 커피’는 당시 농심의 주력 제품으로 회사의 역량을 상당히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여러 기사들을 통해 강글리오 커피는 신춘호 회장이 직접 관여하여 제품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신회장이 골프장을 찾았다가 녹용을 섞을 커피 맛을 본 후 농심 R&D센터에 제품개발을 지시했다는 후문이 있다고 기사들은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강글리오 커피는 시장에서 철저히 실패했습니다.

어떤 부분이 강글리오를 실패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어감이 좋지 않은 네이밍 실패

신회장이 직접 관여했다고 하는 강글리오 네이밍은 완벽한 실패였다고 봅니다. 사실 신라면, 새우깡, 너구리, 짜파게티 등을 직접 작명하며 수많은 성공사례를 남겼던 신회장이지만, 세련됨이 필요한 커피 영역에서 그의 감각은 제대로 발휘되기 힘들었습니다. 강글리오, '가글', '페리오 치약' 등을 연상시키는 어감은 아래의 많은 요인과 함께 실패의 핵심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라면 스프 같아 보이는 디자인의 실패

한국 커피 시장에서 '믹스커피'의 정의를 만들어낸 맥심은 과거의 포장을 버리고 길쭉한 스틱 형태의 포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후발 주자인 남양 등도 맥심의 포장 형태를 그대로 카피하는 미투 전략으로 시장에 어느 정도 안착했는데요. 강글리오는 과거의 믹스 커피가 가지던 넓적한 모양의 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두운 톤의 포장, 강글리오 네이밍 등이 합쳐져 커피에서도 신라면 맛이 날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혹자는 포장을 왜 스프 포장 모양으로 한건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강글리오 커피는 안성 공장에서 생산되었는데요. 커피믹스 제품은 분말 제조 형식으로 라면스프의 제조 공정과 유사하기 때문에 기존 라면스프 제조 설비를 그대로 이용해서 강글리오 커피를 생산했다고 알려졌습니다.



라면회사가 커피를 만든다? 브랜딩의 실패
식품회사의 기술력은 커피로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봅니다. 다만 워낙에 라면계 강자라는 이미지가 강한 농심의 기업 이미지는 커피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동서식품이 맥심이라는 하위 브랜드를 통해 커피를 판매하듯 농심 역시 커피 전문 브랜드를 런칭해서 인스턴트 커피를 마케팅하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훨씬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일 것 같습니다.


커피에 있어서 건강이라는 프레임과 첨가물

커피와 관련해 건강에 대한 유해, 무해 논란은 긴 시간 지속되어 왔습니다. 유해와 무해로 커피를 판가름하기에 이미 커피와 관련한 산업의 구조는 첨예하게 발전되어 있습니다. 물론 과거 '프림 이슈' 등에서 볼 수 있듯 첨가물에 있어서 네거티브 전략은 유효하지만, 건강에 좋은 첨가물을 더한 형태는 커피라는 음료의 소비 문화와는 잘 맞지 않아 보입니다. '커피가 그 자체로 건강에 좋다'는 프레임은 커피 소비를 증진할 수 있지만, 건강에 좋다는 별도의 첨가물을 넣는 것이 건강 식품으로서의 커피 판매 증진을 가져올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게다가 커피 산업에서 커피에 무언가를 섞는 것은 프림처럼 맛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지경을 열어 놓지 않는다면 성공하지 못할 겁니다. 왜냐하면 커피산업에서의 첨가물 대부분은 낮은 품질의 커피 맛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로 여겨져 왔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산지별 커피 맛과 향이 강조되는 시기에 강글리오 사이드 같은 첨가물과 커피를 혼합하는 것은 참 애매한 커피를 탄생시켰습니다.




맛의 실패, 누가 이걸 먹을까?

저는 과거 브랜드커피 전격해부 시리즈의 인스턴트 커피 편에서 강글리오 커피를 두고 '삶은 고구마 끄트머리 맛'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었습니다. 산미를 약간 가지고 있었지만 묽은 한약에 설탕을 탄 맛이었는데요. 당시 비교했던 인스턴트 커피 중에 가장 낮은 점수로 평가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보러가기 http://coffeexplorer.com/82


카누/루카 등의 인스턴트 커피 군과 비교해도 딱히 강글리오 커피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고, 맥심과 같은 인스턴트 커피군과 비교해도 '맛'에 있어서 강글리오 커피는 그저 이질적인 한약맛 커피에 불과했습니다.




농심아 너 왜 그랬니-

대놓고 말해서 회장님이 시키니깐 한거겠죠? 설마 기획자들이 제정신으로 만들었을까 싶다면 좀 과한 말일까요.(죄송...ㅠㅠ) 위에서 낙하산으로 떨어진 아이디어가 아닌, 실무자를 통해 나온 아이디어가 철저한 시장 조사를 거쳤다면 과연 이런 제품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더구나 농심이라는 강력한 식품회사에서 말이죠. 아마 농심의 실무자들은 이 글을 보며 통쾌해하리라 짐작해봅니다.





제품의 한계는 마케팅/CF로 극복할 수 없다

제품이 이렇다 보니 CF의 내용에서 어필할 수 있는 부분도 제한적이고, 컨셉도 모호하기 마련입니다. 보다보면 웃음만 나오는 CF. 잠시 보고 가시죠?


참 애매한 포인트, "강글리오 커피가 예술품이라 카더라"
카더라(!)는 카더라일뿐, 마셔봤더니 고구마 끄트머리-
이범수가 CF해도 안 팔립니다.




1년 쯤 지나 새로 시도한 CF는 적극적으로 건강을 어필해봅니다만, 포장지에 그려진 사과는 정말 충격적이기만 합니다. 도대체 왜 그러신거죠? 젊은 실무자들 의견에 귀 좀 기울입시다- ㅠㅠ







강글리오 커피는 아주 단순한 몇가지 조언들을 우리에게 줍니다.


예쁘게 디자인하라-

멋지게 네이밍하라-

좋은 이미지의 인물을 내세워 홍보하라-

기본에 충실하고 커피에 다른 거 넣지마라-




한 기사에 따르면 농심 관계자는 "강글리오는 애초에 기능성 커피로 출시된 것으로 기존 제품과는 다르다"면서 "시장에서 철수한 것은 아니고 하반기 대대적인 리뉴얼을 감행한 새로운 컨셉트의 제품을 내부 검토중에 있다"고 합니다. (http://www.ebn.co.kr/news/view/777316)


솔직히 커피찾는남자는 '강글리오'란 이름과 맛의 컨셉으로 한국 커피 시장에서의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봅니다. 리뉴얼 하지 마시고, 강글리오는 완벽한 실패로 인정! 맥심 커피믹스를 뛰어넘는 제품으로 인스턴트 커피 시장에 새로운 지평을 열던지, 아니면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RTD 제품을 기본에 충실하게 다른 첨가물 없이 맛있게 만들어주시길 바랍니다.





사실 우리에게 실패하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회장님의 교훈이었던 것은 아닐까?

강글리오는 이제 커피업계에 있어 실패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강글리오가 성공했던 부분이 딱 하나 있는데, 실패를 통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덕분에 잘 배우고 갑니다. 농심-
참고로 저는 농심 제품을 매우 좋아합니다. 부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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