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맛이란 무엇인가?

Coffee Explorer 2015. 9. 18. 01:47

맛이란 무엇인가?

엄청 맛있어 보이는 사진 한 장을 올립니다. 전에 말레이시아에서 제가 먹은 랍스타인데요.^^ 이 사진만을 보고도 우리는 맛이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게 되죠? 이것은 우리가 과거 랍스타을 맛본 경험이 있거나, 혹은 유사한 경험을 통해 외형적으로 이런 색상과 형태를 가진 음식은 맛이 있을거라는 짐작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최낙언씨의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는 이런 글귀가 있습니다.
"맛은 향이 지배하고 향은 뇌가 지배한다."


이 문장은 맛에 있어 향의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우리가 향을 그 자체로 객관적으로 인식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주변 환경 등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뇌'라는 것은 맛을 이야기 함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주목해야할 부분일 것 같은데요. 저는 맛에 대해 이런 표현하기를 좋아합니다. 


"맛은 우리가 음식을 경험할 때 뇌에 전달되는 다양한 자극과 경험을 해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것을 맛에 대한 것으로 조금 바꾸어 표현하자면 "우리가 입으로 먹고 경험하지 전에는 그 음식은 다만 하나의 물질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먹었을 때 그것은 내 안으로 들어와서 맛이 되었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조금 어색한 표현일지 모르겠습니다. 음식은 그 자체로 맛과 향에 대한 성분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우리가 맛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며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의 기준에서 볼 때, 입 안으로 들어와서 뇌에 어떤 자극을 남길 때에야 비로소 '맛'이 된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위에 첨부한 표는 일본의 우마미 연구소가 만든 자료로 '인간이 음식을 경험하는 과정'을 포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표를 따라가며 맛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Basic Taste

가장 기본적/협의적 개념의 맛을 설명합니다. 그야말로 혀(미각)가 느낄 수 있는 감각의 종류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 5가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제 6의 맛이라는 '지방맛' 개념이 학계에 등장했지만 포괄적으로 수용되고 있지는 않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Taste

일반적으로 우리가 한국말로 맛을 표현할 때 '맵다', '떫다'라는 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것은 혀가 느끼는 '통증'에 가깝다는 것을 많이들 알고 계실텐데요. 일본의 우마미 연구소는 이것을 Taste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정리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저 역시 매운 통증을 포괄적으로 (매운) 맛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Basic Taste를 느끼게 되는 경험의 방식과 'Spicy'를 다른 차원/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굳이 전문가들이 구체적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설명해주면 그제서야 매운 것, 떫은 것은 기본적인 맛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죠. 오히려 '맛'을 경험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Spicy를 Taste의 범주로 설명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Flavor

커피업계에서 사용하는 커핑 폼(Cupping Form, 커피의 맛을 평가하고 기록하는 양식)에서 플레이버는 맛과 향이 어우러진 전반적인 음식의 성분이 주는 가장 포괄적인 맛으로 설명하곤 합니다. Basic Taste와 Taste 그리고 입 안에서 느껴지는 충만함과 무게감을 포괄해서 플레이버라는 영어식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역시 한국말에서는 '맛'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다른 말이 마땅치 않아 보입니다.




Palatability

우리가 '맛이 좋다'라고 말하거나 경험할 때의 조금 더 넓은 차원의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역에는 앞선 개념들 외에도 음식의 질감과 온도, 색상이나 광택, 형태나 소리(씹을 때의) 등 까지도 포함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맛의 정의를 보편적인 '뇌의 자극'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겁니다.


간단한 예로 딱딱한 것보다는 부드러운 생크림이, 카푸치노의 거품이 주는 질감에 따라서도 우리의 호감은 극명하게 달라 지거니와 채소를 씹을 때의 '아삭'하는 소리를 통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자극을 느끼고 이를 맛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Food Acceptability

가장 포괄적인 개념은 음식에 대한 가용성, 용인성입니다. 이 개념을 통해 우리가 지금 처해있는 단 차원의 환경(공기나 습도)은 물론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 개인의 기분과 건강 등의 상태가 맛을 인지하는데 영향을 미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맛은 우리의 건강이나 정신 상태, 호르몬을 물론이고 우리가 음식을 섭취하기 전 혀의 상태와 비슷한 향에 대한 과거의 기억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물을 마시거나 단 맛이 많은 과일을 섭취하고 난 직후 혀는 보통의 커피를 맛보았을 때 대부분 '쓴맛'이 과하게 강조되는 등 우리가 맛을 경험함에 있어서 이토록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객관적으로 맛을 볼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맛에 대해 객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정하는 것이야 말로, 맛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맛은 우리가 음식을 경험할 때 뇌에 전달되는 다양한 자극과 경험을 해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라고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카페를 통해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커피에 담아야 할 맛은 무엇인지, 우리가 마시고자 하는 맛있는 커피는 과연 어떤 것인지 한번 더 생각해볼 부분이 있다 싶습니다.




음식, 특히 커피를 마시면서 '먹는다' 혹은 '마신다'라는 표현을 넘어 '경험한다'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어쩌면 매우 적절한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맛에 대해 더욱 궁금하신 분은 '맛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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