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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존재하는 한 명의 사람이 되리-

Coffee Explorer 2014. 11. 4. 16:08

JTBC에서 상영 중인 <유나의 거리>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유나의 거리는 참 특이합니다. 전설적인 소매치기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유나도 소매치기를 합니다. 룸메이트는 꽃뱀, 집 주인은 조폭생활을 은퇴하고 콜라텍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너무나 특이한 유나의 거리에 너무나 평범한 사내인 창만이 등장합니다.


창만의 등장으로 인해 유나의 거리는 서서히 변해갑니다. 창만은 많은 돈을 가진 것도, 대단한 사업을 가지고 거리를 구조적으로 바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사실 사회적으로는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딴 창만이는 내세울 거라고는 딱히 없는 그런 인물입니다. 그러나 창만은 그 존재 자체로 이 거리를 바꾸어 갑니다.


창만이 하는 일은 참 별다른 것들이 없습니다. 그저 조폭 출신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동네 어르신들이 춤을 추는 작은 동네 콜라텍의 지배인일 뿐입니다. 창만이가 좋아하게 된 유나는 알고보니 소매치기였지만, 그것이 창만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소매치기 유나를 좋아하게 되고 유나를 바꾸기 위해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해갑니다. 어린 시절 유나를 버리고 떠났던 친모를 찾아주는 등의 일도 했지만, 사실 줄곧 창만이가 하는 일들은 그저 유나의 거리에서 살아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어느새 그 특별한 거리에 살던 사람들 모두가 창만을 의지해 살아갑니다. 아프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그 자리에는 언제나 창만이가 함께 있습니다. 특별히 창만이가 있어서 콜라텍이 더 성황을 이루거나, 더 많은 돈을 벌어 좋은 곳에 쓰는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겉으로 아무것도 변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유나의 거리'는 이미 창만의 등장으로 변해 있습니다. 창만은 그저 유나의 거리에서 창만이의 방식으로 충실히 살아가고 사랑했을 뿐입니다.


요즘 드라마 '유나의 거리'와 등장인물인 창만을 보면서 제 삶을 되돌아봅니다. 저의 과거는 거대하고 거창한 일들을 하고 싶어서 중국으로, 인도로, 킬리만자로에서 히말라야로 넘나들었던 흥미진진한 시간들이 많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10년 후 제 삶의 궁금하다며 많은 기대를 가져주었지만 거창한 존재가 되어 세상의 구조를 변화시키겠다는 열정이 가득했던 30대 초반에 저는 정작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곧 35세를 맞이하는 지금,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전 한 만남에서 누군가 제가 물었습니다. "그래서 국명씨는 앞으로 뭘하고 싶어요?"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저는 잘 하지 못하겠습니다. "NGO학의 전공을 살려서 이 세상의 기아와 빈곤을 없애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 저의 비전입니다. 특히 커피산지의 식량 주권 확보와 교육을 통한 삶의 질 개선에 앞장 서겠습니다. 더불어 인도 등의 저개발 국가에 들어가 좋은 고용을 제공하는 회사를 세우겠습니다."라고 거창하고 조리있게 과거 30대 초반의 저는 미래를 말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의 대답은 그냥 "잘- 살고 싶습니다." 한 문장에 불과합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보렵니다. 살다보면 어딘가에 도착해있겠지요. 곧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내년에 제가 큰 회사의 CEO가 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별다른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별 볼일 없는 모습일지 모르지만 저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내년에서 어디서든 제 자리에서 조그마한 역할은 하고 있겠죠. 그냥 하루를 열심히 기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재미있게 살아온 인생이지만 너무 큰 기대들은 오히려 제 삶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오지 않았나 하는 조심스런 반성도 해봅니다.


큰 기대는 반사- 작은 사랑과 관심, 소통과 커피는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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