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왜 내 입에 커피들은 맛이 다 똑같지?

Coffee Explorer 2013. 8. 21. 22:44



직장 생활을 하는 30대 중반의 A씨, 언제부턴가 식후에 마시는 커피가 습관이 되기 시작했다. 회사에 처음 입사하던 시절에는 커피라고 하면 다들 믹스커피를 말하는 거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들은 식후에 편의점에 들러 컵에 담겨있는 완제품의 까페라떼를 즐겼다. 그러는 것도 잠시 어느새 회사가 있는 곳이면 커피전문점이 없는 곳이 없게 변해버린 서울 거리에서,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A씨도 편의점 커피보다는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 까페 라떼를 즐기기 시작했다.


주말이되면 A씨는 조금 특별한 커피를 마실 기회들이 생긴다. 간간이 들어오는 소개팅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 술 자리까지 가지 않는 경우, 커피숍에 들어 소위 요즘 트렌드라고 하는 핸드 드립 원두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사회생활 초년생때와 달리 직장 생활이 익숙해지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뭔가 취미생활을 시작해볼겸 여유가 낭만이 있는 것 같아 보이는 핸드 드립커피가 요즘 A씨의 주 관심사다. 




- 대구 핸즈커피 본사에서

인터넷의 동호외와 블로그를 보며 서울의 유명 커피숍 여기저기를 찾아다니기 시작한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콜롬비아부터 시작해서 에티오피아, 케냐, 브라질, 과테말라 등등 여러 산지들의 커피들을 마셔봤지만 서울에서 잘 나간다는 광화문에 있는 커피**에서 마셨던 예가체프도, 명동에 꽤나 유명한 ***커피에서 마신 과테말라도 A씨에게는 그저 쓰디쓴 커피이기만 할 뿐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평소 음식에 대해 남달리 예민한 입맛을 가졌다고 생각했던 A씨는 큰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냥 막 혀인걸까? 내가 그동안 착각하고 살았던 것일까?’ A씨가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며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자신의 혀에 대한 불신과 겸손이다. 고민하던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커피 전문가 B씨에게 이런 고민을 꺼내놓는데 B는 자신의 작업실로 A씨를 초대해서 한 자리에서3종류의 커피를 동시에 맛 볼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해주었다. 3종류의 커피를 한 자리에서 맛본 A씨, 이제서야 각각의 커피가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커피 전문가 B는 A에게 그동안 A씨가 커피의 맛을 잘 느끼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현상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1. 사람은 맛을 분별하는 능력에 비해 맛을 기억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한 자리에서 두 종류의 커피를 맛보면 손쉽게 두 종류를 비교할 수 있는 편이지만, 어제 마신 커피와 오늘 마신 커피를 비교하는 것은 초보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 커피를 오래동안 마셔온 것보다 한 자리에서 다양한 커피를 마셔보는게 맛을 분별하는데에 도움이 된다.
이런 기회를 2-3회 가지면 보통 커피에 대한 기준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한다.


3. 한번 기준이 생기면 오늘 마신 커피와 어제 커피를 비교하는 것도 수월해진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 이미 자신의 기준에 의해 대략적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의 맛 자체를 기억한다기 보다는 어제 자신의 평가와 지금 마신 커피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비교하는 것이다.










다음 날 A씨는 B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커핑 (비 전문가들이 함께 커피 맛을 함께 보는 사교성의 커피 모임)에 참여했다. 이 날에는 3종류의 커피를 맛볼 수가 있었다. B는 의도적으로 맛의 차이가 많이 나는 커피들을 준비했다. A씨는 이 날 신맛이 많은 커피, 바디가 무거운 커피 등을 한 자리에서 비교해서 마시면서 비로서 전문가들이 말하던 커피 맛의 차이에 대해 조금씩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자리를 2-3번 경험하고 난 A씨는 이제 커피에 대한 분별력에 대해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친구 한 명을 데리고 커피숍에 가서 과감히 두 잔의 커피를 주문한다. 조금 특징이 다른 두 잔의 커피를 주문했기 때문에 이제는 두 잔의 맛과 향 차이를 어렵지 않게 구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자신을 ‘막혀’라고까지 생각하던 A씨는 어느새 커피 애호가로 알려지기까지 하며 이제는 커피에 대한 전문 블로그를 운영할 정도로 꽤 유명한 동호인이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