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시먼어베이, 커피 세계관에 충격을 던지다

Coffee Explorer 2014. 7. 31. 20:18

와인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떼루아(terroir)는 포도가 자라는 데 영향을 주는 지리적/기후적 요소와 포도 재배법 등을 모두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다시 말해 떼루아는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의 역할을 말하는 것이죠. 커피업계에서도 떼루아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데요. 커피의 경우에는 떼루아 중에서도 재배법, 그리고 수확 후 가공(process)은, 커피가 산지와 나라, 그리고 대륙별로 다른 맛을 가진다는 과거의 전통적 사고를 넘어설만큼  커피 맛에 주는 영향이 엄청나다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와인에서도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겠지만요. ^^


커피의 수확 후 가공 영역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곳 중 하나로 Ninety Plus 사를 들수 있을텐데요. 얼마 전 나인티플러스에서 내놓은 엄청난 커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시먼어베이(Semeon Abay)라는 커피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커피는 얼마 전에 있었던 2014 WBC에서도 Jeremy Zhang 선수가 사용을 했다고 하는데요. Top 8 중 4위로 입상을 했다고 하네요.


시먼어베이는 프로세싱 감독관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내놓은 만큼, 아주 독특한 프로세싱을 거쳤다고 하는데요. 커피 마니아들이라면 적어도 이름은 알만한 '네키쎄 레드(Nekisse Red)'커피의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후가공을 했다고 합니다. 이 방법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신 분은 아래의 링크를 눌러서 보시기를..

http://www.ninetypluscoffee.com/historical_impressions.php?np_story_id=59




(출처 https://www.facebook.com/ninetyplus)


환한 미소가 왠지 마음을 푸근케 해주는 이 아저씨는 에티오피아 나인티플러스 사에서 커피의 후가공에 대한 디렉터를 맡고 있는 시먼 어베이입니다. 앞서 얘기한 시먼 어베이 커피는 제작자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죠.





출처 : http://www.ninetypluscoffee.com/historical_impressions.php?np_story_id=59





출처 : http://www.coffeereview.com/review/ethiopia-semeon-abay-n3/


이건 얼마 전 커피 리뷰 사이트에 올라왔던 시먼 어베이에 대한 평가입니다. 애프터 테이스트를 제외한 모든 영역이 9점을 받았고 커핑에서 94점을 받았군요. 무엇보다 가격이 눈에 확 띕니다. 원두의 경우 100g당 95,000원이라고 하니 왠만해서는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커피는 아닙니다. ^^


그런데 한국에서 시먼 어베이를 맛 볼 수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나무사이로의 두레커핑에 시먼 어베이가 올라온다는 얘기였죠. 그래서 저도 급하게 시간을 내어서 나무사이로로 달려갔답니다. ^^






나무 사이로의 커핑 테이블에는 이렇게 나인트 플러스의 CI가 멋지게 새겨져 있습니다. 철제 못 등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로 잘 짜여진 이 테이블은 생각보다 매우 견고해서 항상 볼 때마다 탐이 나는 녀석입니다.






오늘 두레커핑 테이블에는 파나마 게샤 줄리엣, 에티오피아 젬베, 콜롬비아 로스나랑호스, 그리고 시먼 어베이가 올라왔습니다. 로스나랑호스가 상당히 좋은 커피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테이블에 올라온 다른 녀석들에 상대적으로 밀려, 마치 좋지 않은 커피인 듯 취급될 만큼 오늘의 두레커핑 차림은 풍성하고 부요했습니다.





나무사이로의 두레 커핑은 이렇게 소박한 4개의 상으로 차려집니다. 각 상마다 4개 종류의 커피가 올라오는데 다른 상의 커피도 같은 순서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출처 : https://fbcdn-sphotos-h-a.akamaihd.net/hphotos-ak-xpf1/t31.0-8/s960x960/10531438_739032986158943_768804866544286515_o.jpg



커핑이 끝나고 나무사이로 페이스북에 올라온 시먼어베이의 사진인데요. 생두 상태를 보더라도 매우 독특하죠? 균일하지 못하다기 보다는 '다채롭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래서 어떤 맛과 향을 가졌느냐 일텐데요.


먼저 분쇄 상태의 향을 말하는 프레그런스에서는 매우 강한 향이 올라왔습니다. 매운 듯한 향이면서도 몹시나 복잡적인 향이었는데요. 고수, 흑후추, 깻잎의 느낌이 도드라졌습니다. 아니 커피에서 무슨 깻잎이냐며 놀라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오늘 커핑 이후 함께 느낌을 나누면서 깻잎이라는 표현을 쓴 사람은 저하나만은 아니었으니 분명 깻잎 향이 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


잠시 커피를 맛보면서 역시나 매우 강한 강도의 맛이 혀를 자극해왔는데요. 깻잎과 함께 산초(추어탕에 넣은 향신료), 계피의 맛이 나더니 뒤에는 점점 무화과 쨈과 같은 느낌이 전해져왔습니다. 혹자는 시먼 어베이를 맛보고 '이 커피가 가지고 있지 않은 향은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분명 복합적인 향과 맛을 가진 것은 사실이었는데요. 저로써는 너무 강렬한 깻잎과 산초 뉘앙스에 자극 받아 쉬이 다른 것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개인적은 소감으로 시먼 어베이를 처음 접하고는 제 마음이 상당히 어려워졌는데요.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이 머리가 아파왔기 때문입니다.


'커피에서 뭐 이런 향이 나는거지?', '정말 사람들이 이런 커피를 좋아할까?'


시먼 어베이는 저의 커피 세계관을 흔들어놓고 있었습니다. 시먼 어베이를 두고 저는 '정신 세계가 복잡한 녀석'이라고 표현했는데요. 한동안 무조건 강한 향과 자극을 최고의 커피라고 여겨왔던 저에게 바로 그런 녀석이 다가온 순간, 오히려 제가 움츠러 들었습니다. 모든 향기와 맛의 강도가 너무 강렬해서 오히려 저의 선호도를 벗어나더군요. 조금은 어딘가가 모자란 듯 겸손하고 수수한 커피가 오히려 더 매력있고 다시 맛보고 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너무나 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시먼 어베이, 이 커피를 마시며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어쩌면 마치 거울을 보듯 시먼 어베이를 통해 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네가 잘난 건 알겠어, 시먼 어베이! 그런데 넌 내게 엄청나게 매력적이진 않구나?'




한참 커피를 맛보며 다양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두레커핑은 끝이 났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이런 생각들까지 하고 있는 저를 보며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커피 참 재밌네.'





오늘 두레커핑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는 시먼 어베이에 대한 소감이 저와 비슷한 분들도 몇 분 계신 듯 했습니다. 역시나 커피 맛에 대한 반응을 주관적인 것일테니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해두고 저는 빠져야겠습니다.


논란의 시먼 어베이는 나무사이로와 엘카페에서 맛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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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저는 두 차례 더 시먼 어베이를 맛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 잔은 핸드드립으로, 나머지 한 잔은 에스프레소였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에스프레소로 마셨을 때 지나치게 다양했던 향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절제되면서 보다 매력적인 커피로 느껴졌습니다.






'너무 복잡한 향을 가진 커피는 호불호가 갈린다.' 어제 나무사이로에 저와 함께 방문했던 농장주와도 이런 얘기들을 나눴어요. 자신이 만든 커피 중에도 그런 커피가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분명한 것은 이런 커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농부들이 들이는 수고는 정말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수고에 응당한 대가를 더 많이 치를 수 있는 산업 구조를 만들어가기 위해서 커피업계가 풀어야 할 숙제가 참 많고,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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