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내 인생의 커피 한 잔 #1 맥심과의 첫 만남.

Coffee Explorer 2015. 5. 21. 11:43





우리 집은 어릴 적부터 손님이 많은 편이었다.

집에 손님이 오면 어머니는 주전자에 물을 끓이셨다.


새로 나온 주전자는 물이 끓으면

소리로 알려주는 신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물이 나오는 구멍을 막는 덮개에

휘파람 같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부속이 들어가있다.


어머니는 찬장에 넣어둔 병을 꺼내서 식탁 위로 올려두셨다.

병 속에 든 검은 가루와 흰 가루, 커피였다.


또 다른 찬장 문을 열고 꺼내는 것은 커피 잔.

바닥에 HANKOOK 이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작은 스푼도 꺼냈다.

이 스푼은 주로 밤을 삼아 먹을 때 쓰는 것인데

커피를 탈 때면 항상 등장했다.


이 스푼으로 검은 가루를 푹 퍼서 한 숫갈 넣는다.

흰 가루도 푹 퍼서 두 숫갈

검은 가루는 구수한 향이 나는데 그냥 먹으면 몹시 쓰다.

이 때 이 흰 가루를 넣으면 대단한 변화가 일어난다.

우유/분유와도 비슷한 이 가루가 합쳐지면

초콜릿, 달고나 같은 맛으로 변하는 것이 흡사 마법과 같다.


아! 잊으면 안된다.

설탕도 마저 퍼서 두 숫갈.


절묘한 타이밍에 주전자가 괴성을 내서 요란을 떨면

가스를 끄고 주전자를 내린다.

이 때 손잡이를 그냥 손으로 잡으면 뜨겁다.

행주를 겹쳐 손잡이를 싸매야 한다.


치지지-

주전자가 움직이며 달궈진 주전자 몸뚱아리에

물이 스치며 소리를 낸다.


첫 잔에 물을 부을 때 소리가 가장 크다.

치지지-


티스푼의 모가지 만큼 물을 따른다.

잔 마다 물을 붓는다.

알싸하고 기묘한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적당히 태운 달고나 같기도 하고

말로다 설명할 수 없다.


이번에는 티스푼으로 저어준다.

미처 녹지 않았던 검정 가루들이 갈색으로 변해간다.

마지막 남은 한 놈까지 다 처단하고 나면

손님께 잔을 내간다.


내 어릴 적 커피는 손님들만 드시는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이 커피를 드시지 않았다.

귀하기도 했거니와

집안 사정이 조금 나아진 후에도 드시질 않았던 걸 보면

어머니 말대로 커피 먹으면 잠이 안 온다는 게

영 틀린 이야기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한 모금 얻어마신 커피가 내 인생 첫번째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