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이야기

커피 감별사_2. 커피에 점수는 어떻게 매기는 걸까?

Coffee Explorer 2014. 9. 13. 23:40


생두, 커피 감별사를 뜻하는 큐그레이더(Q-grader)는 미국의 스페셜티커피협회(SCAA)가 인증한 기관과 감독관에 의해서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을 획득할 수 있는 라이센스를 말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큐그레이더 자격을 총 3,823명이 획득했는데 그 중 약 42%에 달하는 1595명이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인원들 중에서 총 508명은 라이센스 연장을 위해 시험을 치지 않거나 통과하지 못해서 라이센스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한국인 중에서도 200명이 라이센스가 소멸되었기 때문에 현재 큐그레이더 라이센스를 가진 한국인은 1,395명입니다. (2014년 9월 13일 기준)


개인적으로는 현재 한국은 커피 시장에 비해 라이센스 시장이 너무 과열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바리스타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히 다양한 커핑의 경험이지 꼭 큐그레이더 자격을 따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한 목표을 두고 있는 게 아니라면 학원보다는 주변에서 커뮤니티 커핑을 하는 곳들을 열심히 찾아다녀 보는 게 어떨까 생각합니다.




자료 출처 : http://coffeeinstitute.org/the-q-coffee-system/graders

또한 전 세계적으로 전 세계에 인스트럭터는 31명이 있는데 그 중 4명이 한국 국적이거나,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위의 트랜드 자료에서 나오는 것 같이 '커핑'에 대한 관심은 올해(2014년) 들어서면서 급격히 높아진 것 같습니다. 커피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관심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는가 아닌가 싶습니다.



80점, 84점, 94, 96점... 커피 옆에 붙어있는 숫자들은 커피에 대한 생두 전문가, 큐그레이더(Q-Grader)들이 매겨둔 커피에 대한 점수를 말합니다. 지난 번 글 [커피 감별사가 하는 일, 커핑이란 무엇인가?] 에서는 커피(생두) 감별사, 즉 Q-Grader 의 감별 작업인 '커핑'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지식들을 설명했었는데요. 오늘은 조금만 더 들어가서 큐그레이더 교육과 커핑에 대한 원리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의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Q  "맛은 감각이라서 저마다 느끼는 게 다를텐데 하나의 기준으로 점수 매기는 것이 가능한가요?"


 A  과연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그리고 납득할 만한 시스템이라고도 말할 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사실 이 것은 큐그레이더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Grader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맛'이라는 감각의 영역도 객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같은 교육을 이수하고 라이센스를 획득한 큐그레이더라면 같은 커피를 커핑하고 나서 반드시 비슷한 점수를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Q-Grader 교육/커핑의 원리를 조금 더 설명하려고 합니다.



출처 : http://lh4.ggpht.com/TLtcZe9MNUJ6ggdgpPF9589aCa4cnOWzHZG77Ff7OOF-fTIuOQRkq3N5v38NzYobDdx_P8kiBRoLThfx=s590



1. 커피 맛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준다.

사람은 맛을 분별하는 능력에 비해 맛을 기억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편입니다. 한 자리에서 두 종류의 커피를 맛보면 손쉽게 두 종류를 비교할 수 있는 편이지만, 어제 마신 커피와 오늘 마신 커피를 비교하는 것은 초보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 때 커피를 오래동안 마셔온 것보다 한 자리에서 다양한 커피를 마셔보는게 맛을 분별하는데에 도움이 되는데요. 평소에는 비슷하게 느껴졌던 커피의 맛들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고, 향기의 강도와 자신의 개인적인 취향에 대해서도 비교적 쉽게 찾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기회를 2-3회 이상 가지다보면 커피에 대한 기준과 체계가 서서히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번 기준이 생기면 오늘 마신 커피와 어제 커피를 비교하는 것도 수월해지는데요. 커피를 마시는 순간 자신의 기준에 의해 대략적 평가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커피의 맛 자체를 기억한다기 보다는 어제 마셨던 커피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기억해서 지금 마시는 커피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서로 비교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자신의 후각/미각이 다른 사람보다 예민하거나 둔할 때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일반적인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을 혼자만 느끼거나, 반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할 때인데요. 큐그레이더 교육 과정에서 자신의 후각/미각 특징을 파악해서 보편적인 사람들의 감각과 어느 정도 맞춰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커핑에서 단 맛(Sweetness)영역에 대해 자신이 7점을 준 커피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평균적으로 8점을 주었다면 다음 번에는, 기존에 자신이 7점을 준 수준의 단 맛을 내는 커피라면 8점을 주도록 해야합니다.


2. 맛에 대한 기준을 주기적으로 재교정한다.


처음 교육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의 기준이 생성되었다고 하더라도, 감각에 대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 자신의 커피에 대한 평가 기준이 달라졌는지를 확인하고 다시금 교정하는 교육을 받게 되는데요. 이를 두고 캘리브레이션(calibration)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해마다 달라지는 커피의 작황을 고려해서 점수의 기준을 일부 보정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올 해의 커피 작황이 작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면, 작년에는 88점을 받았을 커피를 올 해에는 90점을 주게 되는 것이죠.

캘리브레이션은 최초로 큐그레이더 자격을 부여했던 인스터럭터(Instructor)에 의해 진행되며, 큐그레이더들은 3년에 한 번은 재인증을 위한 캘리브레이션 커핑을 통과해야 라이센스가 유지됩니다. 


3. 후/미각에 영향을 주는 외부 요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

커핑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는 '맛'이라는 것이 감각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감각은 자신의 컨디션과 감정, 호르몬 등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요. 전문적인 커핑 교육을 동일한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하다보면 자연스레 커핑의 환경이 심리적으로 각인됩니다. 커핑 테이블에 올라온 커피를 커핑 스푼으로 마실 때면 최대한 외적 요인이 맛을 감정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도록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통제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여성의 경우 남성과 달리 신체적 특성인 생리에 의해 감정과 호르몬에 변화가 있고, 이것이 커핑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상당히 있는데요. 커핑 훈련에 의한 심리적 각인은 이런 상태에서도 가능한 최선의 객관성을 유지한 채 자신이 커핑을 교육받았던 객관적 환경과 컨디션에서의 커핑 기준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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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원리들은 맛을 느끼는 후각/미각이라는 감각을 객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실제 결과적으로 이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큐그레이더 시스템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두감별사들의 커핑을 통과해서 좋은 점수가 매겨진 커피들은 그렇지 않은 커피들에 비해서 높은 가격이 형성되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점수가 인간이 매력을 느끼는 커피의 모든 것을 담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다수의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선호하는 향미가 강하고 좋은 질감으로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기 고유의 취향과 선호도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는 것이죠. 그러나 보편적으로 점수가 높은 커피는 다수의 사람들로 부터 호감을 얻기 때문에 구매도를 증가시켜서 높은 가격에 거래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진 출처 : http://img.over-blog-kiwi.com/0/26/18/54/201302/ob_03f0aa_cupping-ozone-coffee-roasters.jpg


위에서 설명했던 기본적인 큐그레이더 교육의 원리 외에 감각의 객관화를 위한 커핑의 원칙들이 많이 있습니다.


- 커핑 중에는 상대방과 의견을 교환하지 않는다.

- 그렇지 않을 경우 권위자 or 분위기 메이커의 의견이 과하게 반영될 수 있다.

- 커피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기록으로 남긴다.

- 오직 ‘기록’을 토대로 커핑에 참가한 사람들의 평가를 평균한다.

- 커피의 추출간 발생할 수 있는 추출 오차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이런 원칙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해당 커핑은 객관성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과거 도제식 커피 교육을 보면 제자가 스승에게 배운대로 커피를 만들고, 스승은 커피를 마시고 난 후에 제자들에게 커피에 대한 평가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커핑을 교육한다는 학원을 가도, 커피를 맛 본 후에는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커피에 대한 설명과 평가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받아 적는 주입식 교육을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런 사례들은 자기 자신이 미각/후각이 불완전한 객관성을 가진 장치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집니다. 소위 자신이 절대미각이라는 환상을 스스로 갖고 있기 때문인데요. 사실 자신의 혀는 정확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면 벗어날 수록 비로소 보다 객관적으로 커피의 맛을 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 입니다.

'나의 미각은 정확하지 않으니 신뢰하기 어렵지. 그러니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와 상황을 만들자'라는 교훈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각의 객관화'에 첫 걸음 정도는 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SCAA 커핑의 기본 조건


- 환경 : 좋은 채광, 조용함, 테이블, 온도

- 추출 : 골든컵 규정에 따라 최적의 추출율로 진행

- 로스팅 : 8-12분 사이의 샘플로스팅, 아그트론(홀빈58, 그라인드 63)

- 원두의 상태 : 미디엄-미디엄 라이트, 원두가 타거나 끝이 탄 Tipping이 존재하면 안됨

- 원두 보관 : 20도 이상 상온에서 보관, 8-24시간 이내 커핑

- 추출 : 물 1ml 당 0.055g의 원두를 사용 (125-175ppm, 92-97도의 물 사용)

- 분쇄 : 디팅 or 말코닉 그라인더로 US매쉬 시브 사이즈 20에 70-75% 통과하도록

- 샘플 : 1종류 당 5컵 이상을 준비

- 분쇄 후 원두 관리 : 15분 이내에 물 붓기, 유리커버가 있을 경우 30분까지 허용

- 시향 및 시음 방법 : Sniffing / Slurping 사용



※ 커핑 시간 운용


- 시작 전 : 분쇄 향기 체크 (Dry Aroma, Fragrance)

- 0-4분 : 물 붓기 (Wet Aroma 확인)

- 4-6분 : 브레이킹 & 아로마 체크

- 6-8분 : 스키밍 & 아로마

- 12-17분(Hot) : 69-73도

- 17-22분(Warm) : 58-62도

- 22-27분(Cool) : 37도

- 점수 계산



※ 점수 기준 

커핑 및 채점에 대한 캘리브레이션이 된 경우에라야 아래의 표현과 실제 커피를 매칭할 수 있다.


- 9점대 : 매우 빼어나서 1년에 몇 차례 접하기 힘든 커피, 일반인도 ‘와우!’라고 느끼는 커피

- 8점대 : 매우 훌륭함, 일반인도 동감할 정도로 훌륭한 커피(와, 좋다!)

- 7.5점 : 꽤 훌륭함 (음~, 좋아!)

- 7점 : 훌륭함 (좋아)

- 6점대 : 좋음 (먹을만은 하네)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서 커핑은 맹검법(Blind Test)의 일부를 사용합니다.


※ 이중맹검(Double Blind)법의 의한 관능평가


연구에서 실험을 받는 사람은 물론 실험자도 실험의 내용과 실험의 진행 내용을 모른 채 진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실험자나 피실험자의 의도나 심리에 의해 연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약의 효과를 연구할 때 실험자와 실험을 받는 사람이 위약이 투여되었는지 약효 있는 약이 투여되었는지 모르게 하는 경우를 이중맹검 시험법이라고 합니다.





출처 : http://2.bp.blogspot.com/_A_JOA4qbTsw/S9lxSz_vYXI/AAAAAAAADIM/-nLQncTok1I/s1600/cupping+table.JPG


가장 기본적으로 여러 종류의 커피를 동시에 커핑하면서 각각의 커피가 무엇인지 산지를 알려주지 않고, 알파벳이나 숫자를 이용해서 각 커피를 분류하여 커핑에 대한 기록을 남깁니다. 이것은 특정 커피에 대한 선호나 배격을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칙입니다. 게이샤 등의 더 유명한 산지의 커피 이름이 써있으면 커핑에서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맛을 보기도 전에 맛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커핑은 오로지 눈 앞에 있는 커피를 감각에 의해서만 평가해야 합니다.


커핑이 아닌 경우에도 전문가가 만든 커피라고 알려주면 해당 커피가 더 맛있을 거라는 기대와 착각을 만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도제식 교육은 주로 이런 심리적 기대에 의존하기 때문에 제자들의 커피가 스승의 커피보다 결코 맛 있을 수가 없죠.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커핑이 끝나기 전까지는 해당 커피가 무엇이었는지 알려주지 않아야 합니다.



글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졌는데요. 다음 번에는 큐그레이더의 정규 교육 과목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이 있으시거나 본문 내용 중 잘못된 내용이 있으면 답글로 남겨주세요. 감사합니다.